그대는 오늘 누구와 함께 자리하는가? / 법정 스님
굴뚝 연기가 낮게 깔리는 걸 보고나서 점심 공양 후 서둘러 비 설거지를 했다
오두막 둘레 무성한 가시덤불, 잡목을 작년 가을에 쳐서 지난 봄에 단을 묶어 말려둔 것을 나뭇간으로 옮기는 일이다
미적 미적 미루다 비를 맞힐 때마다 게으름을 탓하곤 했었다
초겨울 까지는 땔 만한 분량으로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널고 목욕도 했다
내친 김에 얼기설기 대를 엮어 만든
내 몸만한 크기 침상을 방안에 들여 놓았다
여름철 방바닥보다는 침상의 잠이 쾌적하다
내 살다가 숨이 멎으면 이 침상째 옮겨 화장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없는 데서 조용히 벗어버린 껍대기를 지체않고 없애 주었으면 좋겠지 싶다
잠결에 쏴~ 앞산에서 비 몰아오는 소리에 낮잠에서 일어났다
나뭇간에 땔나무도 들이고 옷도 거두었으니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그간 가물어서 물을 길어다 채소밭에 주었는데 채소들도 생기를 되찾겠다
자연의 움직임은 순리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소요되는 모든 것을 대주는게 자연이다
분수에 넘치지 않고 이런 자연에 감사해야 한다
강, 산, 바람, 달
세속의 욕심을 떠나 맑고 한가로운 사람,
사물을 보는 눈과 이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들의 주인이다
내가 아는 한 스님의 방 벽에
與誰同坐(여수동좌)라 쓰인 액자가 걸려있다
음각된 이 편액이 방에 들어설 때마다 말없이 반겨준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랴 ?'
그 방 주인의 인품을 대변하듯 나는 이 편액을 대할 때마다 미소를 머금곤 했다
옛 글(何氏語林)에 보면
사혜라는 사람은 함부로 사람을 사귀지 않아 잡스런 손님이 그 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그는 홀로 차나 술잔을 들며 말했다고 한다
"내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로지 맑은 바람 뿐이다, 나와 마주 앉아 대작하는 이는 다만 밝은 달이 있을 뿐이다."
청풍 명월을 벗을 삼았으니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였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그를 가까이 하기보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 방에는 찻잔도 세 개뿐이었다
셋 이상이면 넘쳐 차 마실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산중에서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니 사람과 같이할 일은 없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 흰 구름, 시냇물
이런 것들과 같이 있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할 것인가?
유유상종. 같이 살아 있는 것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러니 자리를 같이 하는 그 상대가 나의 한 분신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오늘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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