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끌쩍거리는거부터 먼저 해본다
써내려가다보면 제목이 나오겠지...
머리속에서는 뭐랄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육신을 잘 보전하는게 효도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내용만 생각날뿐 정리가 안되지만
오늘 큰집에서 제사를 모시고 오는 그 느낌이 개운치 않아서인가보다.
큰집 둘째조카가 둘째 아들을 낳아 집안의 경사가 아닐 수없다..
이제 할아버지라 부르는 손주가 여덟으로 늘었다.
아직 혼사를 치루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 조카들이 줄 섰으니
몇년이면 그 배가 늘어나겠지...
시제를 모셔야 원칙이지만
집안 장 손부가 손자 뒷바라지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신것도 있지만
시제축,산신축을 쓰고 읽어야하는 내가
팔에 보조대를 차고서야 조상님앞에 나설 수없다는 장형의 결론에 따르기로 해서였다.
집사람을 어제부터 큰집에 보내 제사 음식장만에 거들라고 하였지만
병원에서 내일 모래 수술결과를 보고 퇴원을 권한 의사의 만류에도
항상 그렇치만 내 고집대로 퇴원을 결정했다.
*
가슴과 어깨의 보조대가 한몸인양 걸치고 들어섰건만
물 묻은 두손을 앞치마에 훔치며 반기는 큰형수가 오늘따라 부모님같이 느껴졌다.
하기야 칠십이 넘고도 두해가 지나신 장형이
마주앉아 얘기할 형제가 이젠 나밖에 없다는것도 한 몫하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아~~~ 내가 이젠 우리집안의 중추가 되어있구나하는 책임감도 같이 눌려왔다.
*
노모가 시골에 내려가신지 어연 달 반이 되어가나보다.
년중 유일하게 광산김씨 일가가 다 모이는 봄시제가
90평생을 살아오시면서 족히 부담도 가고 피하고 싶기도 하셨을 노모는
갖은 핑게를 대면서 시골에 가신다고 하셨다.
그러시는 어머님을 나는 대충 알것같다고 느낀지가 겨우 십여년 전이니
막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무디긴 어지간한것 같았다.
각설하고
꼬부라진허리를 곧추 세우시지도 못하면서 시골에 내려가시려는 어머님의 주된 이유는
시골에서 나는 나물이며 생선들을 다듬고 삶아서 시제상에 올리는게
종부의 의무라고 생각하시는 굽히지 않는 그 고집아닌 의무감 때문도 있겠지만
당신의 자식들이 맛있다는 소리를 연발하면서 먹는 모습이 그리워서가 더 비중일게다.
그런데 금년에는 그러한 시제를
집안제사로 결정한 것이 못내 내 잘못인것 같은 개운찮은 느낌이 뇌리를 떠나지 않음이다
*
입원중에 나는 세권의 소설을 읽고 두권짜리 타나타노트 상권을 시작하면서 집에왔다.
처음 이외수의 "훈장"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둘째 공지영의 "도가니"는 한시절 사회 이슈가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홀대에 대한 되새심이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어머니를 부탁해"란 소설을 선택한 데는
시제를 앞두고 수술 예약을 하고 입원하는 내가 과연 잘하는 선택인가를 내 자신에게 질문하면서였을까?
그전에 건성으로 읽었던 내용이 히미해진것도 있지만
우리네 베이비부머의 부모들의 삶에 대한 더 선명한 조명이 필요해서였다고 변명하고싶다.
*
한시간전 상병 2호봉인 아들의 전화에 나는 늘쌍하는 얘기지만
"내아들 건강해야한다"가 나의 당부였다.
막내인 나에게 나의 노모는 지금도 그러실것이다
"아가 밥 잘먹고 건강해야흔다"
독수리타법은 면했지만 통증이 있는 왼쪽어깨를 혹사시키면서까지
이러한 푸념을 내 일기장에 적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성격도 문제지만
부모님께 효도란 다른게 아닌것 같다
부모님이 주신 육신을 건강하게 잘 보전하는게 첫째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해야겠다
부모님이 있어 내가 있기에
객지 칭구들은 익히 알고있는 내가 즐겨 부르는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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