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10월 중추절즈음
짧은 연휴를 어떻게 지낼까 고심하다
태풍과 장마도 빗겨간
거기에 윤달이 낀 금년 가을의 풍작을 담아보고 싶었다.
촬영시간이 오후 2시반경이어서
편의상 해를 등뒤로 두기위하여 함평에서 나산 쪽으로 선회를 잡았다.
새로 산 루어대를 실험해 볼겸
테마는 나산서국민핵꾜 동창들이 살던 마을에 있는 저수지로 삼았다.
마음은 벌써 뱅굴모퉁이 강가에 가 있었지만
차량으로 훑고 지나가는 형식으로라도 담아본다.
마을 진입도로에서 멀리 잡다보니 사진이 선명치 못한 점 양해 바란다.
시골에 있는 칭구들이야 벌 의식없이 디다보겠지만
객지에 있는 칭구들은 사뭇 세삼스러우리라 믿어보며~~~~~
모자라는 자료인들 어떠랴
배경음악 볼륨을 조금 더 올리고 잠시나마 그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보자~~~~
*
*
광영마을 입구에서
마을앞에 이름 모를 비가 서 있고 왼쪽 멀리 보이는 광영 저수지 둑
팔월 명절이라 마을앞에 승용차들이 몇대 서있다.
이마을에 살았던 친구들이 누구였을까?
내친김에 종복이테 폰했더니 처가에 가는 중이란다.
짧게 고독이 스쳤다.
객이 남의 동네앞에 서서 핸폰들고 지랄 떠는구나 싶기도 하고~~~
우리가 아직 어릴 적
인근 마을 어른 남녀 불문하고 삼태기를 머리에 이고. 바작지게에 지고
흙과 돌 무데기를 날라 전표를 받고 자신의 돌 무덤을 만들어 가며
누가 더 많이 날라서 더 많은 전표를 받나 내기 하듯 밀가루를 벌어오던 그 시절.
한해와 가뭄 극복이 지상과제였으니
물걱정 덜고 밀가루도 벌어오니 농한기에 이보다 더 좋은 수입원이 있었으랴?
무릎이 헤지고 등짝에는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꽃다운 우리네 형님 누님들
그들보다
열심히 공부 가르켜야 할 그 자식과 같이 등짐을지는 부모님의 심상이 어떠 했을까
어렴히 헤아려 보면 그때의 어버이들은 가슴앓이 수위가 지금과 달랐으리라.
몇해전만 해도 앙상한 갈개지 그루턱들이 볼쌍사납더니만 제법 숲이 찼다.
그때도 대낚은 할 곳이 못된다는걸 알아 기대는 않했지만
내 몸은 어느새 차에서 내려 루어 대를 던지고 있었다.
혹시 배고픈 산메기나 덥썩하지나 않을까 했는데 꽝이었다.
저 좌측 보이지 않는 곳에 강씨가 한분 뙤얏볕에 앉아 졸고 있었다.
내가 옆에 앉아 말동무라도 바라는 눈치였지만 난 대낚이 아니었기에 미안시러웠다.
저수지 뚝방에서 다시 뒤로 돌면 광영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손 바닦만한 논 다랭이에 누런 벼들이 익어가는 풍광이 그림과 같다.
저 멀리 앞산 기슭에 어릴적엔 없었던 축사 비슷한게 보인다.
내 기억으로 밍크를 사육하다 자빠진 그곳 부근인 듯하나
우리네 어릴적 정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축사 돈사 등은 배제하고
가능한 그시절 것 위주로 담아볼까 하는데 역시 맘이 바쁘기만 했다.
(잘못된 내용이나 마을이름은 댓글로 수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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