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 Fyodor Mikhaylovich Dostoyevsky .1821 ~ 1881)
1849년 12월21일,
사형을 선고받은 스물여덟살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형장에 섰다.
당시 사회주의적 사상을 가진 페트라솁스키(1821~1866)가 주도한 독서모임에서 활동하다
반체제 혐의로 검거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시 니콜라이 1세는 서유럽 자유주의 사조의 유입을 두려워한 나머지
젊은 지식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자 일종의 연극을 꾸몄다.
형이 집행되던 날은 영하 50도의 추운 겨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사람의 사형수와 함께 두 눈이 가려진 채 사형대에 묶였다.
사형수들에게는 최후의 5분이 주어졌다.
당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정은 훗날 그가 펴낸 장편소설 <백치>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고 술회했다.
짧은 5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제는 죽는구나’ 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왔던 것이다.
사형 직전 풀려난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됐다.
이 역시 당초 니콜라이 1세의 계획이었다.
옴스크에서의 감옥생활 체험은 나중에 장편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
<학대받은 사람들>에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이로써 10년간의 공백을 너끈히 극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것은 형을 마치고 군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한 뒤인 1859년이다.
극적으로 사형을 면한 그는 여생을 소설 쓰기에 쏟았다.
1864년은 아내와 형의 죽음, 잡지 경영 실패 등이 겹친 불운한 해였다.
그 결과 막대한 빚에 쫓긴 채 해외로 도피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쫓기는 삶을 살게 된 데는 노름빚의 영향도 컸다. 그는 도박 중독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백치> <악령> 등 3대 장편을 발표했다.
1878년부터 1880년까지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했다.
그리고 1881년 1월28일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질적인 폐질환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장편소설 <백치>에서
나는 사형수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지상에서 보낼 수 있는 최후의 5분이 주어졌다.
28년을 살아오면서 5분이 그토록 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 신기했다.
5분을 어떻게 쓸까?
옆에 앉아있는 같은 형편인 사형수에게 한 마디씩 작별인사하는 데 2분
오늘까지 살아왔던 생활을 돌아보며 정리하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나를 낳아준 땅(자연)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작정하였다.
고여오는 눈물을 삼키며 작별인사를 하고 두고온 가족들 생각에 벌써 2분이 지나버렸다.
자신에 대하여 돌이켜보려는 순간
'3분 후면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했다.
지난 28년이란 세월을 아무렇게나 낭비했던 것에 지독하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 수 있을텐데..!!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져보았던 마지막 순간의 5분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날들을 헛됨이 없이 보내야겠습니다.
'낙서방 > 웃기남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아낙네가 쓴 남편 글 (0) | 2011.02.10 |
---|---|
내가 차버린 여자들 (0) | 2011.02.10 |
지구상 희한한 풍경 (0) | 2010.12.29 |
물침대 테스트 (0) | 2010.11.15 |
수영장갈때는 표지판을 조심합시다 (0) | 2010.11.15 |